제6회 번개콘서트!! 이번에도 그 기대를 넘어섰다.

(서울=국제뉴스) 강창호 · 이정제 기자 = 지난 한 해는 파란색과 빨강색으로 시작해 혼합된 다양한 색들이 뭉개져 진흙탕처럼 혼탁한 색이 되었다. 불안한 미래, 암울한 미래를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 채 같은 하늘 아래 이 땅의 우리 모두는 2017년 새해를 맞았다.

하늘 아래 새로울 것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절망감 가득한 한 해를 보내고 이어진 이번 겨울날의 풍경은 소한을 하루 앞두고 다행히 봄날을 시샘 하듯 했다.

젊음과 문화의 거리로 일컬어지는 대학로, 새해에 처음 열리는 하우스콘서트의 공연장인 <예술가의집>을 향해 가는 발길은 무겁지 만은 않았다.

사전에 공개되지 않은 게스트 연주자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과 기대 때문에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그 동안 진행된 513회의 하우스콘서트를 멋지게 기획한 주최 측에 대한 일말의 신뢰 때문인지 제514회 하우스콘서트이자 6번째 번개콘서트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회를 즉흥적인 번개콘서트로 진행한다는 것은 뜻밖의 이벤트이다.

공연 일정조차 오직 SNS를 통해서만 공지되고 사전에 연주자에 대한 아무런 인포메이션을 주지 않고 진행된다. 그런데 이런 묻지마 식 또는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은 기존 흐름을 통해 어느 정도 예측할 근거를 주곤 한다.

심술쟁이 장난꾸러기의 장난이라기 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꽝 없는 퀴즈 같은 안정감이 있다.

기존에 진행된 5회까지의 번개콘서트 게스트는 대규모 공연기획을 통해서 제작된 콘서트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소위 거물급(?) 아티스트들이었기 때문이다. 5회 때의 게스트가 <정경화>였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번개콘서트는 무조건 참석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어쩌면 연초부터 행운의 선물을 받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이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커져 만 갔다.

▲ 프로그램을 인터미션 때 나눠줄 만큼 철저한 보안유지 사진= e. Kang Bros

공연 시작 전까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사전에 게스트의 존재를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기에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그 동안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기대감과 즐거움의 포인트를 제작진들은 기어이 찾아냈고 새로운 방식의 컨셉으로 기획 된 번개콘서트는 어긋남이 없이 감동으로 완성되어왔다고 한다.

이번에 6번째로 시도되는 짧은 행보이지만 공연 수준을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음은, 15년 간 진행되어온 더하우스콘서트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개콘서트는 진정 음악을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궁리 끝에 찾아낸 행운의 퍼즐 조각 같은 일종의 선물이다.

▲ 공연장소인 대학로 예술가의집 입구 사진= e. Kang Bros

오후 8시 정각 30분 전, 대학로에 위치한 <예술가의집>앞에 섰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준공된 지 86년 되는 역사적인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건축계의 선구자인 박길룡에 의해 설계되어 경성제국대학(구 서울대학교)본관으로 사용되다 1976년부터 2010년까지 34년 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본관으로 사용되어 오다 2010년 12월 9일 예술인들이 마음껏 창작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 <예술가의집>으로 재 개관한 엄격함과 권위를 강조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오래된 고풍스런 건물과 오늘의 하우스콘서트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예술가의집>건물에 들어서자 오늘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스탭들과 대면을 했다.

공연 제작 과정을 수행하는 열정과 정성 어린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따뜻한 눈빛을 간직한 스탭들의 안내를 받고 2층에 마련된 100석 규모의 아담한 다목적홀 공간으로 향했다.

대부분 공연을 감상하기 전에 제작 스탭들의 표정과 분위기에서 그 공연의 완성도를 읽을 수 있다. 왠지 새해 초부터 감동스런 무대가 연출 될 것만 같았다.

이미 공연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가 기존 공연을 경험해 본 관객들이 그리 크지 않은 공간 속에 하나 둘 씩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예술가의집> 2층에 마련된 다목적홀의 공간 바닥은 겨울의 계절감을 충분히 느끼도록 차가웠지만 관객들은 신발을 벗고 방석에 앉았다.

처음 콘서트를 보러 온 것 같지 않은 공연 관람에 대한 경험이 있어 보이는 관객들은 낯설어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객석 의자가 없이 자유롭게 바닥에 앉는 방식이라 나름 시야 확보가 편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듯 했다.

공연 시작 10분 전 오후 7시 50분, 연주자가 누군지 모르는 생경한 상황

신발을 벗고 정해진 좌석이 없이 바닥에 앉아 있는 상황, 공간 속에 가득 채워진 사람들의 속삭임과 또 다른 소음, 이런 모든 낯선 상황들이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도록 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John Cage의 4분 33초 음악이 1952년 8월 29일 미국 뉴욕, 우드스톡의 매버릭콘서트 홀에서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에 의해 연주되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관객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예상 할 수 없는 다가올 순간을 인식하며 각자가 느끼는 것은 두려움과 떨림, 호기심과 기대감의 반복적이고 매우 복잡한 감성과 이성의 충돌이다.

<예술가의집> 2층에 마련된 공연장소는 다목적 홀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무대와 객석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지 않았다. 하우스콘서트 만의 컨셉과 잘 맞게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돌출 무대가 아닌 평면 공간의 한쪽 면에는 족히 30 여 년 이상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스타인웨이앤드선스(Steinway & Sons)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었다.

오랜 시간 피아노를 사랑한 누군가의 음악적 교감을 충족시키며 함께 호흡한 깊은 세월의 흔적이 진한 블랙 컬러 속에 담겨있는 듯하다.

존재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는 연주자를 위한 의자 하나만이 놓여 있었다.

이미 설정된 테스트 공간 속이라 생각하며 그 순간을 최대한 누려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공간의 모든 것이 친숙하게 느껴져 왔다.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 서성이는 사람들, 뭔가 준비하는 스탭들의 움직임은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완만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 공연의 프렐류드(prelude) 같았다.

이윽고 8시가 되었고 더하우스콘서트의 박창수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우스콘서트에 대한 소개와 그 동안의 흐름에 관해 나지막한 음성으로 박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이크를 통한 말소리임에 분명한데 피아노 앞에 서 있는 박대표는 첼로를 연주하는 듯 또는 바리톤의 아리아를 노래하는 듯 느껴졌다.

연희동의 개인 주택에서 시작된 하우스콘서트를 설명하는 박 대표의 표현은 억지로 짜맞춘 대본을 읽는 것이 아닌 지나침 없이 군더더기 없는 진솔한 음악인의 고백이라고 들렸다.

이어서 주최 측 스탭이 마이크를 잡고, 오늘 공연에 관한 안내 멘트가 이어졌다.

지난 5회까지 역대 번개콘서트의 게스트들은 외르크데무스(1대), 김선욱(2대), 에라토 앙상블(3대), 에드워드 아우어(4대) 였고 5대 게스트가 정경화였다고 한다.

예술의전당 레퍼토리도 아닌 작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하우스콘서트 게스트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의 만찬 수준이다. 이런 공연이 관객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공연계의 구조적인 면에서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한데 어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도 응답해 주지 않았지만 분명한 것은 더하우스콘서트의 힘이다.

▲ 맨발의 열정을 보인 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드디어 오늘의 게스트가 소개될 차례다.

등, 퇴장을 위한 무대 위의 상수와 하수 개념이 없이 출입구 쪽을 통해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스탭들이 문을 열자, 입구 쪽에 앉아있던 관객들이 먼저 게스트의 존재를 알아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기 시작했다. "우와!" 게스트가 독특하게 사뿐사뿐 맨발로 걸어 들어오는 짧은 그 순간에 작은 무대와 객석 공간은 이미 흥분하고 놀란 관객들로부터 튀어나온 감탄사로 채워지고 있었다.

"와우~ 손열음이다!"

검정 블라우스에 같은 색조의 실키한 느낌의 바지 차림으로 이 시대에 가장 총망받는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맨발로 피아노 앞에 섰다. 좌우로 둘러보며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고는 인사를 한다. 한번, 두 번, 세 번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예상치 못한 손열음의 등장에 관객 모두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녀의 두 손이 스타인웨이 건반 위로 올려지고 공간은 동화 속 오래된 성 안에 울려 퍼지는 환희의 음색으로 채워지듯 변해갔다. 마치 마법처럼, 한 겨울 밤에 즐거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첫 곡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의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슈만의 1번부터 23번까지 피아노 곡 중 스스로 자신의 초기 작품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는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Op.16)가 흐르며 공간을 완벽하게 채워버렸다.

피아노가 연주되는 동안 마치 오른손의 두 손가락에 마비 증세를 느꼈던 슈만 대신에 그의 뮤즈인 클라라가 연주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너무나 자신 만만하게 곡을 해석하고 자유분방하게 곡을 해석해 나가는 손열음은 가히 슈만의 뮤즈라고 착각해도 좋을 만큼의 기량을 드러내고 있었다.

맨발로 페달을 밟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아름다운 뮤즈가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나 파자마 차림으로 홍차 한잔을 들고, 피아노 앞으로 걸어가서는 기지개를 켜고 기분 좋은 미소를 띄우며 피아노 건반을 마음껏 두드리는 듯한 모습이 교차되었다.

가장 편안하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연주할 때 자신의 기량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손열음이 입고 있는 위아래 옷이 정말 완벽하게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파자마라고 연상 되었다. 그녀는 지금 스타인웨이를 가장 정확하게 울리도록 최적화 시키며 슈만과 겨울날의 거리를 산책하듯이 사뿐사뿐 맨발로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관객들은 점점 더 몰입해갔고 뭔가에 빠져들 듯 약 40 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최면에서 깨어나듯 현실의 공간을 인지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공감한 관객들의 박수 속에 숨죽이고 있던 긴 호흡을 내 뱉어야 했다. 인터미션 시간이 주어졌고 놀라움에 대한 기대는 한층 더 커져 가고 있었다.

두 번째 곡, 아르보 패르트(Arvo Part)의 <Variationenzur Gesundung von Arinuschka>

발트해의 발트 3국 중 슬픈 보석 같은 에스토니아 출신인 아르보의 음악은 특히 좋았다. 공산 체제 구 소련의 억압 속에서 버텨온 음악가의 독특한 감성과 울림이 손열음의 연주를 통해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공감하고 있었다.

오늘 연주된 곡 들 중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음악가의 작품이라 더 색다른 느낌을 주었고 아르보가 고전을 색다르게 잘 재 해석 했듯이 손열음은 관객에게 감동을 안겼고, 아르보가 현장에 있었다면 그 또한 충분히 감동하지 않았을까?

조금 무거운 아르보의 음악에 이어서 세 번째 곡, 라벨(Maurice Ravel)의 우아한 왈츠 곡 <Valses Nobles Et Sentimentales>을 연주했다.

레퍼토리 선정에 생각이 깊었다고 느껴졌다. 왈츠 또한 손열음 만의 열정이 더해져 색다른 감성을 들려주었다. 마치 청바지를 입고 왈츠 리듬에 춤을 추는 듯한 모던 하고 색다르지만 어색하지 않은 조화로운 느낌.

마지막 곡으로 리스트의 곡이 연주되었다.

Franz Liszt의 <Mephisto Waltz No.1, S.514>연주는 손열음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음악이었다. 리스트가 파가니니의 신기에 가까운 열정적인 연주 모습에 쇼크를 받고 매혹 되었듯이 그녀는 현란한 기교의 리스트를 표현함에 있어서 또 다른 감동을 전해주었다.

손열음은 리스트가 소파에 깊이 앉아 낮잠을 자고 있을 때, 그의 앞에서 당돌하게 그의 곡을 자유롭게 연주하듯 자신만만하게 건반을 두드렸다. 당대의 연주자로서 쇼맨십도 훌륭했던 리스트가 오늘 손열음의 연주를 보고 있었다면 엄지 두 개를 높이 들고 요즘 젊은 세대의 표현처럼 깜놀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무대였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뜨거운 박수가 이어지며 인사를 하고 퇴장했던 손열음이 다시 들어와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스트라우스의 곡이 연주되며 관객들은 더욱 더 감동의 찬사를 보냈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즐거운 표정으로 기꺼이 3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하며 손열음은 환한 미소를 지었고 자신의 음악에 호응하고 감상해준 관객들과 진정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무지개 빛을 뿜어내듯 그녀는 다양한 빛을 분출하는 자기만의 진한 색을 머금고 있었다.

다른 연주장의 모습과 달리 이번 번개콘서트의 독특한 공연 현장을 지켜보며 세계적인 거장의 무대를 체험하는 듯 했다.

오늘 거리는 아스팔트로 채워졌고 싸늘한 공기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삭막한 이 시대에 작은 공간 속에 따스한 유토피아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오늘 우리는 스트라우스의 왈츠를 리스트가 연주하는 듯한 놀라운 무대를 경험했다.

저 멀리에 있던 강원도 출신의 작은 소녀가 사뿐사뿐 다가와 이 시대의 뮤즈임을 증명하는 멋지고 찬란한 무대를 완성했다.

Robert Schumann(1810~1856)슈만(독일), Arvo Part(1935~)아르보(에스토니아), Maurice Ravel (1875년 ~ 1937년)라벨(스페인 태생, 프랑스 국적), Franz Liszt (1811~1886)리스트(헝가리)

오늘 손열음의 무대는 레퍼토리 선정에서도 그녀의 창의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고평가된 최고의 음악가들의 작품 3곡과 함께 현존하는 에스토니아 출신 아르보 패르트(Arvo Part)의 작품이 들어 있었다. 새해 연초 무대를 위해서 왜 이런 선곡을 했을까 알 것도 같으면서도 이유가 궁금했다. 시대를 반영한 연주자의 소통의 무대를 보면서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2017년 신년 초, 대학로의 오늘 밤은 정말 버라이어티 한 무대로 채워졌다.

슈만이 클라라와 거닐던 독일식 정원에 헝가리 출신 리스트가 함께하며, 스페인 태생의 프랑스인 모리스 라벨이 피아노 연주를 하고 아르보의 협연이 있던 자리에 우리는 초대 받은 손님으로 뮤즈와 함께했던 밤이다.

그녀는 스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강에서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고 이런 환상을 잠시 더 누려도 좋을 순간이다.

더하우스콘서트는 다음 무대를 준비하며 매주 계속 진행된다.

이런 무대를 준비해준 더하우스콘서트의 박창수 대표와 모든 스탭들은 충분히 행복해 할 자격이 있고 더 좋은 무대를 위해 한발 더 나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더하우스콘서트 스탭들에겐 더 이상 마음의 감동을 전할 방법이 없어 아쉬울 뿐이다.

꼬냑 한잔이 없어도 충분히 낭만적인 밤 거리의 찬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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