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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연재시리즈] 천년의 세월이 숨 쉬는 곳

기사승인 2017.10.12  18: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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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사 전나무숲길

[글/사진 여행작가 박성우]

시선이 흐려질 때가 있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는 일상에서 느닷없이 일어난다. 초점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시야는 하얗게 변한다. 활자는 읽히지 않고, 프로그램 또한 보이지 않는다. 백색의 도화지가 돼버린 자리엔 오롯이 지난날의 흔적만이 대신한다. 희미해진 어릴 적 기억에서부터 뜨거웠던 청춘의 한나절까지 말이다.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났었고 즐거웠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순서 없이 하나의 선에 나란히 펼쳐진다. 마치 월정사의 전나무숲길처럼. 그 길엔 지난 천 년 동안의 흔적이 묻어있다. 불심을 드리러 온 행자부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온 사람까지 함께 한다. 이들의 웃음과 눈물이 숲길에 뿌려져 있다.

 
 
▲ 월정사 일주문

바람, 나무, 물소리 가득한 전나무숲길

박노해 시인은 빛과 어둠에 총량이 있듯이 기쁨과 슬픔에도 양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맞닥뜨릴 감정은 한정됐으니 당장은 힘들고 괴로워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숲길에 쓰러져 있는 한 그루 나무를 보면서 시인을 떠올리는 이유다.

이 전나무는 2006년 10월 태풍에 꺾였다. 월정사의 또 다른 상징이었던 나무가 500년의 길고 긴 세월을 마감한 것이다. 고목이 생을 다하던 날을 생각하면 애잔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실감은 다른 나무들이 채워가고 있다. 특히 수령 370년이 넘은 전나무가 풍기는 위용은 남다르다. 30m가 족히 되는 몸체를 따라 올라가면 자연스레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곧게 뻗은 나뭇가지와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숲길과 나란히 흐르는 천은 오대천의 상류 계곡이다. 이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월정사, 선재길, 상원사, 오대산을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 전나무숲길이 아름다운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오대천이 있어서다. 바람, 나무 소리 위에 물소리가 함께 더해져 전나무 숲길을 풍요롭게 한다.

   
▲ 전나무숲길을 걷는 행자

천 미터 남짓한 길에서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일주문부터 금강교까지의 약 1000m의 거리를 말한다. 나이가 80년 넘은 전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서 있어 아늑함을 준다. 숲길은 사찰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인 일주문에서부터 조성됐기 때문에 월정사 일부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길 위에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는 행자들이 많다. 또한, 맨발로 걷는 이들도 만날 수 있다.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숲길을 단단하게 만든다. 1km 남짓한 길에 각자의 사연을 뿌리면서. 그 희로애락은 거름이 되어 전나무숲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

*작가 소개 및 약력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한다. 이유는 맛의 균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서다. 단맛, 쓴맛, 신맛 안에서 나만의 맛을 찾는 게 즐겁다. 글도 그렇다. 감성과 이성 사이에서 개성을 추구하고 싶다.

이성범 기자 sblee@gukjenews.co.kr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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